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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봉의 조선어문법,조선어학회,현대 한국어 교육

by 역사 & 시사 2025. 4. 16.

**김두봉(金枓奉, 1886~1958?)**은 독립운동가이자 교육자, 정치가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그의 한글 표기법 정립과 조선어 문법 체계화에 기여한 언어학자로서의 역할 또한 매우 중요하다.
그는 『조선어문법』을 집필하며, 조선어를 학문적 대상으로서 과학적이고 실용적인 언어로 확립하려 했다.
특히 일제강점기 언어 탄압 속에서도 조선어의 민족 정체성과 체계성을 지키려는 그의 노력은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현대 한국어 문법 교육과 한글 표기 체계의 기반이 되었다.
이 글에서는 김두봉의 언어학적 업적과 『조선어문법』의 의의,
그리고 그의 활동이 현대 국어 연구에 끼친 영향을 중심으로 살펴본다.


『조선어문법』의 출간과 목적 – 언어를 민족의 무기로

김두봉은 일제강점기 초기에 중국 상하이로 망명하여,
교육자 및 독립운동가로 활동하는 동시에 언어학자로서 한글 문법 체계 확립에 나섰다.
그는 조선어가 단순히 일상 의사소통 수단이 아니라, 민족의 사상과 정체성이 담긴 핵심 도구라고 보았으며,
정확한 문법 체계와 통일된 표기법을 갖추지 못한 한글은 국가의 위기를 더욱 심화시킨다고 판단했다.

이러한 문제의식 아래 김두봉은 1916년경 『조선어문법』 초판을 상하이에서 출간한다.
이 책은 기존 국문학 중심의 서술을 넘어서 한글의 문법 체계, 품사 구분, 문장 구성 원리 등을 본격적으로 분석한 최초의 체계적 국어 문법서였다.

주요 특징은 다음과 같다:

  • 과학적 접근 방식:
    서양 언어학에서 사용하는 품사 분류와 문장 구조 분석 기법을 참조해,
    한글 문장을 형태소 단위, 기능 단위로 나누어 설명하였다.
  • 민족 중심 서술:
    문법을 통해 우리말의 우수성, 체계성, 고유성을 증명하려는 국수주의적 시각과 실용성의 균형이 돋보였다.
  • 교육 목적의 실용성:
    그는 조선어 문법이 일반 민중과 학생들에게도 쉽게 이해되고 교육될 수 있도록 구성해야 한다고 강조했으며,
    이를 통해 독립운동의 근간이 되는 민족 언어 보급을 실천하려 했다.

김두봉의 『조선어문법』은 이후 조선어학회와 국어학자들에게 영향을 주었고,
광복 이후 국어 문법 통일안 마련의 선구적 기초가 되었다.


조선어학회와의 연계 – 언어 민족주의 실천의 장

김두봉은 1930년대 초중반, 조선어학회(현 한글학회)의 설립 취지와 활동에 깊이 공감하며 협력하였다.
비록 그는 직접 상근 연구원은 아니었지만,
학회 창립 초기의 이론 정비와 연구 방향 설정에서 이론적 구심점 역할을 수행했다.

그의 문법 체계는 특히 한글 맞춤법 통일안 제정(1933년) 과정에서
문법적 기준 설정의 한 축으로 참조되었으며,
문법 없는 표기는 혼란을 낳고, 표기 혼란은 민족 의식을 해친다”는
그의 주장은 언어를 통한 민족정체성 수호 논리로 확대되었다.

또한 김두봉은 당시 사회주의 계열의 독립운동 진영과 연계하여,
민중 중심의 문해 교육과 실용 언어 보급 운동에도 참여하였다.
이러한 활동은 언어학적 이론을 넘어서,
언어학을 현실 운동의 무기로 전환한 드문 사례로 평가받는다.

그는 언어학자로서의 사명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한민족의 말을 지키는 일은, 총보다 먼저 해야 할 싸움이다.
말이 죽으면 생각이 죽고, 생각이 죽으면 조국도 없다.”

이러한 철학은 이후 북한에서도 계승되었고,
북한 국어정책의 초기 기조에도 김두봉의 문법 중심주의가 반영되었다.


현대 한국어 교육과의 연결 – 평가와 한계

김두봉의 문법 체계는 해방 이후 대한민국과 북한 모두에서 교과서, 교육 커리큘럼, 맞춤법 기준 정립에 일정 부분 영향을 미쳤다.
특히 『조선어문법』에서 제시한 **품사 분류(체언, 용언, 수식언, 관계언 등)**는
오늘날 국립국어원 기준 품사 체계의 선행 모델로 인정된다.

그러나 그의 체계는 다음과 같은 학문적 한계점도 지적된다:

  1. 정치적 이념과의 결합
    그의 문법서는 단순한 학술서가 아니라 항일, 민족주의적 선전 목적이 혼재되어 있어,
    객관적 기술이 부족하고 감성적 서술이 가미된 경우가 있다.
  2. 서양 문법 이식의 부작용
    당시로서는 선진적이었지만,
    라틴어나 영어식 문장 구조를 한글에 그대로 적용하려 한 시도는 일부 부정확하거나 인위적이라는 평을 받는다.
  3. 후속 이론과의 단절
    해방 이후 남북 분단으로 인해,
    김두봉의 문법 체계는 한국에서 노선상, 이념상 이유로 정식 계승되지 못했고,
    북한에서는 부분적으로 계승되었지만, 체제 변화로 인해 본래의 순수 문법 정신은 퇴색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두봉의 작업은
한국어 문법학이 ‘독립된 학문’으로 자리잡는 데 가장 선구적인 기여였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을 만하다.


결론

김두봉은 독립운동가이자 정치가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그의 ‘언어학자’로서의 정체성은 그 이상으로 강력하고 선도적인 의미를 지닌다.

『조선어문법』은 한국어를 과학적, 민족적 언어로 정립하려는 최초의 체계적 시도였으며,
그의 언어관은 민족 정체성과 교육, 실천의 도구로서 말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현대 국어 교육의 기초가 되었다.
김두봉의 언어학적 유산을 다시 조명하는 일은,
한글의 위대함을 학문과 실천으로 동시에 증명한 지식인의 흔적을 되살리는 일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