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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모제스와 뉴욕 재개발 갈등, 도시를 뒤바꾼 논란의 전말

by 스페이스9999 2025. 6. 23.

뉴욕
뉴욕

 

뉴욕의 스카이라인은 오늘날 세계적인 도시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지만, 그 뒤에는 로버트 모제스라는 인물과 그의 대규모 도시계획이 있었다. 20세기 중반, 그는 뉴욕 재개발을 주도하며 고속도로, 다리, 공원 등 현대적 인프라를 건설해 도시의 모습을 바꿨다. 그러나 그의 프로젝트는 주민들과의 갈등, 특히 제인 제이콥스와의 대립으로 큰 논란을 낳았다. 모제스의 비전은 뉴욕을 자동차 중심의 대도시로 만들려는 야심찬 계획이었지만, 이 과정에서 지역 공동체의 파괴와 사회적 불평등 심화라는 대가를 치렀다. 이 글에서는 로버트 모제스의 도시계획, 뉴욕 재개발의 성과와 문제, 그리고 그로 인한 갈등의 전말을 심층적으로 다룬다. 그의 업적이 뉴욕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그리고 어떤 교훈을 남겼는지 함께 살펴보자.

로버트 모제스, 뉴욕 도시계획의 설계자

로버트 모제스(1888~1981)는 20세기 뉴욕 도시계획의 중심 인물로, 40년 이상 공공기관에서 막대한 권력을 행사했다. 그는 파리의 오스만 남작에서 영감을 받아 뉴욕을 자동차 중심의 현대 도시로 재편하려 했다. 192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 그는 뉴욕주와 뉴욕시의 주요 프로젝트를 주도하며, 2012년 환율 기준 약 250조 원에 달하는 공사를 이끌었다. 그의 대표적인 업적에는 롱아일랜드 고속도로, 존스비치 주립공원, 링컨센터, 브루클린-배터리 터널, 트라이버러 다리 등이 있다.

 

모제스의 도시계획 비전은 중산층이 자동차로 자유롭게 이동하며 뉴욕의 경제를 활성화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도시의 미래는 포괄적인 도로망에 달렸다”고 주장하며, 뉴욕을 차량 중심의 대도시로 만들기 위해 고속도로와 다리를 대규모로 건설했다. 예를 들어, 롱아일랜드 고속도로는 교외 지역으로의 접근성을 높여 중산층의 교외 이주를 촉진했다. 존스비치 공원은 여름철 수백만 명의 뉴요커들에게 휴양지를 제공하며 그의 공공 공간 개발 철학을 보여줬다.

 

그러나 모제스의 접근 방식은 종종 독단적이었다. 그는 주민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프로젝트를 강행하기 위해 정치적 영향력을 활용했다. 존스비치 공원의 고가도로를 낮게 설계해 버스 이용 저소득층의 접근을 제한한 사례는 그의 인종차별적 의도가 반영됐다는 비판을 받았다. 또한, 그는 공공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예산을 과소 추정하거나, 부유층의 토지를 피해 고속도로를 설계하는 등 논란의 여지를 남겼다. 이러한 행보는 모제스를 ‘도시계획의 독재자’로 불리게 했으며, 뉴욕 재개발 갈등의 씨앗이 됐다.

 

모제스의 권력은 뉴욕주 공원위원회, 트라이버러 다리·터널 관리국 등 여러 직책을 통해 유지됐다. 그는 공공기관의 자금을 민간 은행과 연계해 대규모 프로젝트를 추진할 수 있었다. 그의 정치적 네트워크는 뉴욕 주지사와 시장조차 견제하기 어려울 정도로 강력했다. 하지만 이러한 권력 집중은 이후 주민들과의 갈등, 특히 제인 제이콥스와의 대립에서 그의 몰락을 예고했다.

뉴욕 재개발의 빛과 그림자

로버트 모제스의 뉴욕 재개발은 도시의 외관과 기능을 근본적으로 바꿨다. 그의 프로젝트는 뉴욕을 세계적인 대도시로 만드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브루클린-배터리 터널은 맨해튼과 브루클린을 연결하며 교통 흐름을 개선했다. 트라이버러 다리는 맨해튼, 브롱크스, 퀸스를 이어주는 핵심 인프라로 자리 잡았다. 링컨센터는 뉴욕의 문화 중심지로, 센트럴파크 근처에 위치해 예술과 공공 공간의 조화를 보여줬다. 또한, 모제스는 뉴욕 전역에 수백 개의 공원과 놀이터를 조성해 시민들의 여가 생활을 풍요롭게 했다.

 

이러한 성과는 뉴욕의 경제 성장과 관광 산업 발전에 기여했다. 예를 들어, 존스비치 공원은 연간 600만 명 이상이 방문하는 뉴욕의 대표적 휴양지로, 모제스의 공공 프로젝트가 시민들에게 실질적인 혜택을 제공했음을 보여준다. 롱아일랜드 고속도로는 교외 지역의 부동산 개발을 촉진하며 중산층의 삶의 질을 높였다. 그의 인프라 프로젝트는 뉴욕을 자동차 시대에 맞는 도시로 탈바꿈시켰고, 1950~60년대 미국의 경제 호황과 맞물려 도시의 위상을 강화했다.

 

그러나 이러한 빛나는 성과 뒤에는 심각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모제스의 재개발은 수천 가구의 강제 이주를 초래했다. 특히 저소득층과 소수민족 공동체가 가장 큰 피해를 입었다. 예를 들어, 크로스 브롱크스 고속도로 건설로 약 5,000가구가 철거됐고, 주로 흑인과 히스패닉 가정이 거주하던 지역이 파괴됐다. 이 과정에서 주민들은 적절한 보상이나 대체 주거지를 제공받지 못했다. 이러한 강제 이주는 지역 공동체를 붕괴시키고, 뉴욕의 사회적 불평등을 심화시켰다.

 

모제스의 도시계획은 또한 환경적 문제를 낳았다. 그의 고속도로 중심 정책은 대중교통 발전을 저해했고, 오늘날 뉴욕의 교통 혼잡과 대기오염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다. 또한, 그는 예산 확보를 위해 공사비를 과소 추정하거나, 공공 자금을 비효율적으로 사용해 뉴욕시의 재정 부담을 가중시켰다. 그의 프로젝트는 단기적 성과에 치중한 나머지, 장기적인 도시 지속 가능성을 간과했다는 비판을 받는다. 이처럼 모제스의 뉴욕 재개발은 도시의 현대화를 이뤘지만, 그로 인한 사회적, 환경적 비용은 오늘날까지 뉴욕의 도시 문제로 남아 있다.

제인 제이콥스와의 갈등, 도시계획의 전환점

도시계획 갈등을 상징하는 뉴욕 거리의 항의 시위

로버트 모제스의 뉴욕 재개발은 1960년대 제인 제이콥스와의 대립으로 결정적인 전환점을 맞았다. 제이콥스는 도시계획 전문가가 아닌 지역 주민이자 작가로, 『미국 대도시의 생사』(1961)에서 모제스의 자동차 중심 도시계획을 날카롭게 비판했다. 그녀는 고속도로와 대규모 재개발이 지역 공동체를 파괴하고, 도시의 인간적 가치를 훼손한다고 주장했다. 제이콥스는 보행자 중심의 거리, 소규모 상점, 주민 간의 상호작용이 도시의 활력을 만든다고 믿었다.

 

이 갈등의 정점은 모제스가 추진한 로어 맨해튼 고속도로 계획이었다. 이 프로젝트는 그리니치 빌리지와 소호 등 맨해튼의 역사적 지역을 관통하며, 수많은 주거지와 상업 공간을 철거할 예정이었다. 제이콥스는 이 계획이 뉴욕의 문화적, 사회적 가치를 파괴한다고 보고, 주민들과 함께 대규모 항의 운동을 조직했다. 그녀는 시위, 공청회, 언론을 활용해 모제스의 계획을 저지하려 했고, 결국 1962년 이 프로젝트는 무산됐다.

 

제이콥스의 저항은 단순한 프로젝트 중단을 넘어 도시계획의 패러다임을 바꿨다. 그녀의 주장은 주민 참여, 지역 공동체 보존, 인간 중심의 도시 설계를 강조하는 새로운 도시계획 철학을 낳았다. 예를 들어, 그녀의 이론은 이후 뉴욕의 도시 재생 프로젝트, 특히 하이라인 공원 조성에 영향을 미쳤다. 하이라인은 폐철로를 공공 공원으로 재활용한 사례로, 지역 주민과 관광객 모두에게 사랑받는 공간이다.

 

반면, 이 갈등은 모제스의 몰락을 가속화했다. 그의 독단적 행보와 주민 무시는 점차 정치적 반발을 불러일으켰고, 1968년 그는 트라이버러 다리·터널 관리국에서 물러났다. 1970년대 들어 그의 영향력은 급격히 줄었고, 뉴욕은 새로운 도시계획 방향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제이콥스와의 갈등은 도시계획에서 권력과 민주적 절차의 균형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줬다. 이 사건은 뉴욕뿐 아니라 전 세계 도시계획에 깊은 영향을 미쳤으며, 오늘날까지 도시 개발 논의의 핵심 사례로 남아 있다.

모제스의 유산과 뉴욕의 오늘

로버트 모제스의 도시계획은 뉴욕에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겼다. 그의 고속도로, 다리, 공원은 여전히 뉴욕의 뼈대를 이루며, 도시의 기능과 미학을 정의한다. 예를 들어, 센트럴파크의 놀이터와 공공 시설은 모제스의 공원 개발 철학을 반영하며, 뉴욕 시민들의 삶에 필수적인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링컨센터는 세계적인 공연 예술의 중심지로, 모제스의 문화적 기여를 보여준다. 그의 프로젝트는 뉴욕을 글로벌 대도시로 만드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러나 모제스의 유산에는 어두운 면도 있다. 그의 재개발로 파괴된 지역 공동체는 회복되지 않았고, 강제 이주당한 주민들의 삶은 큰 상처를 입었다. 크로스 브롱크스 고속도로는 브롱크스 지역의 경제적 쇠퇴를 가속화했으며, 이로 인한 빈곤과 범죄 문제는 오늘날까지 이어진다. 또한, 그의 자동차 중심 정책은 뉴욕의 대중교통 발전을 저해해, 현재 지하철 시스템의 노후화와 교통 혼잡을 초래했다. 뉴욕의 높은 집값과 주거 부족도 모제스 시기의 재개발이 남긴 장기적 문제로 꼽힌다.

 

제인 제이콥스의 철학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려는 현대 뉴욕의 도시계획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예를 들어, 하이라인 공원은 지역 주민과 디자이너들이 협력해 조성한 공공 공간으로, 제이콥스의 보행자 중심 철학을 구현한다. 브루클린의 덤보 지역 재개발은 소규모 상점과 문화 공간을 보존하며 지역 경제를 활성화한 사례다. 이러한 프로젝트들은 모제스의 대규모 개발과 달리, 주민 참여와 지속 가능성을 중시한다.

 

모제스의 유산은 뉴욕의 빛과 그림자를 동시에 보여준다. 그는 뉴욕을 현대화했지만, 그 과정에서 수많은 이들의 삶을 희생시켰다. 그의 도시계획은 권력의 집중과 민주적 절차의 부재가 얼마나 위험한 결과를 낳을 수 있는지를 교훈으로 남겼다. 오늘날 뉴욕은 모제스의 비전과 제이콥스의 저항이 얽힌 복잡한 도시다. 그의 재개발 갈등을 돌아보는 것은 뉴욕의 과거를 이해하고, 미래의 도시계획을 고민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센트럴파크에서 만나는 뉴욕의 역사

로버트 모제스의 도시계획을 직접 체감할 수 있는 곳은 뉴욕의 센트럴파크다. 모제스가 공원 내 놀이터, 산책로, 공공 시설 개발에 기여한 이곳은 뉴욕의 심장이자 그의 공공 공간 철학을 엿볼 수 있는 상징적 장소다. 1858년 조성된 센트럴파크는 맨해튼 한가운데 843에이커의 거대한 녹지로, 자연과 도시가 조화를 이루는 공간이다. 공원에는 호수, 산책로, 동물원, 공연장이 있어 시민과 관광객 모두에게 사랑받는다. 센트럴파크를 걷다 보면 모제스의 비전과 뉴욕의 역사를 동시에 느낄 수 있다.

입장 안내

센트럴파크는 연중무휴 24시간 무료로 개방된다. 다만, 공원 내 일부 시설은 별도 요금이 부과된다. 예를 들어, 센트럴파크 동물원 입장료는 성인 $19.95, 어린이 $14.95, 65세 이상 $16.95다. 겨울철에는 월맨 링크에서 스케이트를 즐길 수 있으며, 1인당 $12~$20(스케이트 대여비 별도)다. 여름철 무료 콘서트나 셰익스피어 인 더 파크 공연은 사전 예약이 필요할 수 있으니 공식 웹사이트를 확인하자.

교통 안내

한국에서 뉴욕까지는 인천공항에서 JFK 공항으로 가는 직항편이 편리하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매일 운항하며, 왕복 항공료는 비수기 기준 약 150만~250만 원이다. 비행 시간은 약 14시간 30분. JFK 공항에서 센트럴파크까지는 택시(약 $50~$60, 30~45분 소요) 또는 지하철(A 또는 E 라인, $7.75, 약 1시간)을 이용할 수 있다. 공원 근처 주요 지하철역은 59 St-Columbus Circle, 72 St, 81 St-Museum of Natural History다. 공원 내 이동은 도보 또는 자전거(1시간 $15~$20)가 적합하다.

숙박 안내

센트럴파크 근처 숙소로 세 곳을 추천한다. 첫째, 파크 하얏트 뉴욕은 럭셔리 호텔로, 센트럴파크에서 도보 5분 거리에 위치한다. 1박 약 70만~100만 원이며, 공식 웹사이트나 익스피디아로 예약 가능하다. 조기 예약 시 10~15% 할인 혜택이 있다. 둘째, 웨스틴 뉴욕 앳 타임스 스퀘어는 중급 호텔로, 공원에서 도보 15분 거리다. 1박 약 30만~50만 원이며, 호텔스닷컴에서 예약하면 무료 취소 옵션이 제공된다. 셋째, 엠파이어 호텔은 공원과 링컨센터 근처에 있으며, 1박 약 25만~40만 원. 부킹닷컴을 통해 예약하면 조식 포함 패키지를 선택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