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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연의 아악 정비, 악기 개량, 음악국가의 설계자

by 역사 & 시사 2025. 4. 17.

**박연(朴堧, 1378~1458)**은 조선 세종 대의 대표적인 음악가이자 실학자, 외교관으로,
특히 아악 정비와 전통 악기 개량에 있어 한국 음악사의 근간을 마련한 인물로 평가된다.
세종의 지원 아래 그는 중국과의 악제 비교, 음률 이론 정립, 악기 제작과 조율 체계 개선
광범위한 음악 개혁을 수행하며,
조선 왕조의 음악 제도를 과학적·체계적으로 수립하는 데 결정적 기여를 했다.
이 글에서는 박연이 추진한 아악(雅樂)의 정비 작업,
그리고 악기 개량의 실제 내용과 그 역사적 의미를 중심으로 분석한다.


아악 정비의 배경 – 왜 박연을 선택했는가



조선 초기, 특히 태조에서 태종 시대까지 궁중 음악(아악)은 체계가 잡히지 않은, 여러 스타일이 뒤섞인 형태였다.
고려 말부터 중국 송나라와 원나라 음악을 받아들인 것들이 주를 이루었고,
그마저도 음을 맞추는 일이나 연주 방식이 통일되지 않아, 예(禮)와 음악(樂)을 중시하는 사상과 국가 위신을 드러내는 데 한계가 있었다.

세종은 이 점을 심각하게 여겼고,
예악을 통해 왕도 정치를 펼치기 위해 음악의 제도화를 추진했다.
이때 중국에 방문한 경험이 있고, 음악적 재능이 뛰어났던 박연이 발탁되면서 개혁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박연은 단순한 음악가가 아니라, 예법(禮法)과 음률(律呂)에 밝은 유학적 기반의 기술 관료였다.
그는 개혁을 추진하며 다음과 같은 원칙을 세웠다.

 


중국 악기 제도를 수용하면서 조선의 현실에 맞게 융합

 


무작정 따라 하기보다는 비교 연구와 현장 실측을 통한 합리적인 정비
수치 중심의 음악 이론 확립
음악의 음높이를 감각으로 느끼는 것이 아니라, 길이, 재질, 진동수를 기반으로 과학적으로 분석
국가의례를 중심으로 하는 음악 제도를 설계
궁중, 종묘, 문묘, 외교 등 용도에 맞는 악기, 편성, 악곡 체계 구축
이러한 철학은 1430년대에 시작된 아악 제도 개편 사업의 근간이 되었고,
이후 조선 음악의 ‘기본 틀’을 결정짓는 기준이 되었다.

 

박연의 악기 개량 활동 – 실용적인 조율과 국산화 추진

 


박연이 맡았던 개혁의 핵심 중 하나는 악기를 개량하고 제작 체계를 확립하는 것이었다.
특히 그는 악기의 음률과 구조를 표준화하여
개별 연주가 아닌 국가 단위의 음악 체계를 갖추도록 이끌었다.

주요 악기 개량 및 제작 내용은 다음과 같다.

편종과 편경

중국에서 들여온 석경(돌종), 금속 종의 음을 맞추는 문제를 해결하고,
음정 간의 간격을 일정하게 유지할 수 있도록 재질과 두께 조절 기준을 정했다.
편성 악기 조절
아악 편성 시 음의 높낮이와 강약의 균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각 악기의 위치, 수량, 연주 방법까지 체계적으로 정리했다.
율관 제작과 음률 재정비
박연은 12율 4청성에 맞춰 율관을 직접 제작하고,
종묘, 문묘의 의례 음악에 사용될 정확한 음계 구성을 확립했다.
현악기와 타악기 국산화
당시 일부 악기들은 여전히 중국에서 수입했지만,
박연은 국내 재료와 제작자 양성을 통해 자립 기반을 마련했다.
이러한 노력은 단순히 악기를 물리적으로 개선하는 데 그치지 않고,
국가의 이념과 정체성을 담아내는 매개체로서 음악을 활용하려는 시도로 평가된다.

더불어 박연은 음악 개혁과 함께 악기 도면, 명칭, 용도 등을 정리한 기록을 남겼으며,
이것이 후에 성현이 완성한 『악학궤범』의 기초가 되었다.

 


제도화된 음악 국가의 설계자

 


박연의 업적은 오늘날 다음과 같이 재평가되고 있다.

한국 전통 음악 제도화의 시작
종묘, 문묘, 궁중 음악 등 모든 의례 음악의 표준화와 매뉴얼 작업을 주도한
‘조선 아악 체계의 창시자’로 평가받는다.
기술과 이념의 융합 사례
박연은 단순한 음악 기술자가 아니라,
유교적 예악 사상과 실용 기술을 결합한 유학자형 실무가로서
**정치와 예술을 연결하는 모범**으로 여겨진다.
과학 기반 음악의 실현자
음악의 음률을 감각이 아닌 과학적으로 분석하여
‘길이=음높이’ 공식을 악기 제작에 적용한 점은
서양보다 앞선 수치화 음악관의 사례로 주목받는다.
악학궤범 편찬의 기반 조성
비록 그가 직접 『악학궤범』을 집필하지는 않았지만,
박연의 악기, 악곡 정비 사업은 이후 세종과 성종 시대의 음악 백과사전 편찬에 중요한 토대가 되었다.

박연은 단순히 음악가가 아니라, 조선의 국가 이념과 음악 제도를 연결한 제도 설계자였다.
그의 아악 정비와 악기 개량 작업은 세종 시대 문화 국가 건설의 실질적인 기반이 되었으며,
유교적 예악 사상을 과학적 체계로 구현한 실용 유학자형 인물이었다.
오늘날에도 국악의 뿌리와 한국 음악사의 제도적 기초를 이해하려면 박연을 빼놓을 수 없다.
그의 삶과 사상은 전통과 과학, 이념과 실용이 융합된 조선식 근대성의 출발점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