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범도(洪範圖, 1868~1943)는 한국 독립운동사에서 가장 전설적인 무장투쟁 지도자 중 한 사람이다. 특히 1920년 봉오동 전투에서 일본 정규군을 대파하며 조선인의 자존심을 지켜낸 상징적 인물로 기억된다.
그는 이름 없는 사냥꾼에서 시작해, 항일 유격대의 총사령관으로 성장했고, 자유시 참변과 소련 망명, 해방 전 타국에서 생을 마감한 독립운동가로서 영광과 비극을 동시에 겪었다.
이 글에서는 홍범도의 생애와 업적, 그리고 오늘날 다시 그를 돌아보는 이유를 정리해본다.
평민에서 무장 독립운동가로 – 홍범도의 출발
홍범도는 1868년 평안남도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부모를 여의고 가난한 삶을 살았다. 이후 함경도와 연해주 지역을 오가며 사냥꾼, 광산 노동자, 짐꾼 등 밑바닥 삶을 전전했지만, 이 경험은 훗날 지형을 활용한 유격전술의 밑거름이 되었다.
그는 1890년대 말부터 의병 활동에 뛰어들며, 대한제국이 외세에 밀려 무너지던 시기부터 스스로 민족의 방패를 자처했다.
1907년 정미의병 해산 이후, 일본군의 탄압을 피해 만주와 연해주로 이동한 그는 독립군 재건에 힘을 쏟았다. 이후 1910년대 중후반부터는 대한독립군을 창설하여 독립전쟁의 본격적인 전선에 뛰어들었고, 다양한 항일 단체들과 연합하여 조직적 무장투쟁의 기반을 마련했다.
특히 그는 조선의병전통과 러시아식 군사체계, 그리고 지역 실정에 맞는 게릴라 전술을 혼합하여 유연한 전투 지휘 능력을 보여주었다.
그의 리더십은 단순한 전술 능력에 그치지 않았다. 강직한 성품, 대중적 인기도, 도덕성을 갖춘 지도자로서, 독립군 내부의 분열을 최소화하며 다양한 단체 간의 연대를 이끌었다. 이러한 점에서 홍범도는 민중의 장군이자, 연합의 중심축으로 평가된다.
봉오동 전투 – 조선 독립전쟁의 결정적 승리
1920년 6월, 홍범도는 북간도 일대에서 대한독립군, 대한국민회군, 서로군정서군 등과 함께 연합부대를 구성해 일본군과 대대적인 교전을 준비한다. 이는 바로 **‘봉오동 전투’**였다.
이 전투는 간도 일대 항일 무장세력이 일본군 보복 작전에 맞서 치른 전투로, 홍범도가 이끄는 독립군 연합부대는 지형을 활용해 일본 제19사단 예하 부대를 유인·매복해 대승을 거두었다.
당시 일본군은 정예 병력을 동원했으나, 독립군은 봉오동의 협곡 지형과 고지대를 이용해 공격 후 후퇴, 재매복 등 유격 전술을 효과적으로 펼쳤고, 수십 명이던 병력으로 수백 명 규모의 적을 상대하며 결정적 타격을 입혔다.
일본군 사상자 수는 150여 명 이상, 독립군은 4~5명 수준의 피해로 알려져 있다. 이는 무장 독립운동의 역사에서 최초의 본격적인 전면 승리였으며, 국내외 언론에도 대대적으로 보도되며 일제 당국과 조선 민중 모두에게 강한 충격을 준 사건이었다.
봉오동 전투의 승리는 이후 청산리 전투, 밀산 전투 등으로 이어지는 무장투쟁 전선의 사기 고양에 결정적 기여를 했다. 또한 일본은 이 사건 이후 독립군 소탕을 목적으로 대규모 ‘훈춘 사건’을 조작하고 간도 지역에 대규모 병력을 투입하게 된다.
즉, 홍범도의 승리는 단지 전투적 성과에 그치지 않고, 조선 민중에게 ‘싸워서 이길 수 있다’는 확신과 희망을 심어준 정신적 기폭제였다.
자유시 참변과 망명 생활 – 빛과 그림자의 교차
봉오동 전투 이후 홍범도는 다른 독립군 지도자들과 함께 북만주에서의 연합 전선을 확대하며 러시아 연해주 지역으로 진출한다. 그러나 1921년, 소련 공산당과의 입장 차이, 무기 반납 문제 등을 둘러싸고 **‘자유시 참변’**이라 불리는 비극이 발생한다. 이 사건으로 수백 명의 독립군이 희생되었고, 홍범도 역시 정치적 입지를 잃게 된다.
이후 홍범도는 소련령 카자흐스탄의 크즐오르다로 이주하여 철도 노동자와 극장 경비원 등으로 생계를 유지하며 조용히 살아간다. 당시 그는 소련 공산당에 입당했지만, 활동가로서의 영향력은 사실상 단절되었다.
1943년, 그는 소련 땅에서 해방을 보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한때 조선의 독립을 위해 전장을 누비던 영웅이 낯선 땅에서 이름 없이 생을 마감한 것은 우리 역사 속 비극 중 하나로 남는다.
그의 유해는 2021년 대한민국으로 봉환되어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되었으며, 그의 공적을 둘러싼 현대적 평가와 논란도 함께 이어지고 있다.
결론
홍범도는 봉오동 전투의 영웅이자, 독립전쟁사의 상징적 인물이었다. 빈민 출신이었지만 영웅으로 성장했고, 민중의 지도자로, 조선의 자유를 위해 생을 바친 투사로 기억된다.
그의 삶은 독립운동의 고난과 승리, 외세 속의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모두 보여준다. 오늘날 우리는 그를 단지 과거의 인물로 남기지 말고, 지금 우리가 지켜야 할 가치와 정신의 상징으로 다시 읽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