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서재필은 왜 중요한가 (현대민주주의, 자주정신, 계몽사상)

by 스페이스2000 2025. 4. 11.

서재필은 조선 말기와 대한제국 시기를 살며 한국 근대화에 큰 기여를 한 개화파 인물로, 독립운동가이자 정치사상가, 언론인이자 의사로 활동했다. 그는 갑신정변의 주역으로 개혁을 시도했으며, 이후 미국으로 망명하여 한국 최초의 시민권자가 되었고, 귀국 후에는 ‘독립신문’을 창간하고 독립협회를 주도하면서 민주주의의 씨앗을 심었다. 그의 삶과 사상은 오늘날 우리가 민주주의와 자주성을 되새기는 데 중요한 교훈이 된다.


현대민주주의의 뿌리, 서재필

서재필은 한국 근대사에서 민주주의 가치의 선구자로 평가받는다. 조선 말기, 계급 중심 사회와 전제 군주제가 공고하던 시절, 그는 자유와 평등, 국민의 참여를 강조하는 정치 체계를 주장했다. 1896년 창간한 '독립신문'은 국한문 혼용체를 사용하여 일반 대중에게 정치, 사회 정보를 전달하려 했고, 이는 근대 언론의 시초로 평가된다. 또한 '독립협회'를 통해 시민들이 자유롭게 모여 토론하고 의견을 개진할 수 있도록 한 '만민공동회'는 한국 최초의 공개 민회로 간주되며, 이는 훗날 의회정치의 발판이 되었다.

특히 독립협회 활동 당시 서재필은 입헌군주제 도입, 근대적 사법제도, 언론의 자유, 교육 확대 등을 주장하며 오늘날 민주 국가에서 기본으로 여겨지는 가치들을 한국 사회에 처음 도입했다. 그는 정치적 자유와 인권을 보장받는 사회가 진정한 국가 발전의 길이라 확신했으며, 권위주의 체제를 벗어난 민중 주도의 사회를 꿈꿨다. 이런 점에서 서재필은 단순한 정치 운동가가 아닌, 현대 민주주의 정신을 조선에 최초로 소개한 선구자로 평가된다.


자주정신의 상징, 독립운동가 서재필

서재필은 자주적인 국가 수립과 국민의 자각을 중요시한 인물이었다. 그는 초기에는 갑신정변에 참여해 조선의 정치체계를 바꾸고자 했으나 실패한 후, 미국으로 망명해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그곳에서 의학을 공부하고 미국 시민권을 획득한 뒤에도 조국을 잊지 않고 대한민국의 자주 독립을 위한 활동에 헌신했다.

그는 귀국 후 '독립신문'과 '독립협회'를 통해 조선의 내정개혁과 대외 자주권 수호를 강조했다. 특히 외세에 의존하려는 일부 조선 지식인 및 정치세력과 달리, **“자주적 개혁 없이는 진정한 독립도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이는 단지 독립이라는 결과를 넘어, 그 과정을 통해 국민 스스로가 변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민족 자결권에 대한 확신이었다.

그의 자주정신은 당시 상황을 고려할 때 매우 선진적이며 급진적인 것이었다. 조선이 여전히 청나라, 일본, 러시아 등 열강의 틈바구니에 놓여 있을 때, 서재필은 국민의 힘으로 나라를 바로 세우는 비전을 제시했다. 이는 오늘날에도 자주 외교와 내정 독립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중요한 메시지다.


계몽사상의 실천자, 지식으로 나라를 깨우다

서재필은 단순히 정치적 주장에 그치지 않고, 실질적인 교육과 계몽 활동을 통해 대중을 깨우치려 노력한 인물이다. 그는 민중이 깨어나야 국가가 바로 설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국민 교육과 정보 전달에 주력했다. 그가 창간한 '독립신문'은 당시 최초로 일반 백성들이 쉽게 읽을 수 있도록 만든 신문이었으며, 이를 통해 서양의 문물, 정치 개념, 세계정세 등을 알렸다.

또한 그는 의료인으로서도 활동하며 근대 의학을 조선에 소개했다. 이는 단순한 치료를 넘어, 건강한 국민이 건강한 국가를 만든다는 철학 아래 이루어진 실천이었다. 그의 의료 활동과 언론 활동, 그리고 교육 강연은 모두 국민이 스스로의 삶을 이해하고 판단할 수 있는 지적 기반을 제공하는 계몽 활동이었다.

그는 또한 독립협회 활동을 통해 일반 민중이 정치와 사회에 참여할 수 있는 장을 마련했고,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남녀공동 참여 강연회와 공개 토론회 등을 주도했다. 이는 전통 유교사회에서 금기시되던 참여 민주주의적 접근으로, 이후 신민회, 3.1운동, 임시정부 등 근대 독립운동에 큰 영향을 끼쳤다.


서재필의 정신을 오늘에 되새기며

서재필은 단순한 개화운동가나 언론인이 아닌, 근대 민주주의, 자주 독립, 계몽사상을 조선 사회에 실제로 심은 인물이다. 그는 그 시대를 앞선 생각과 행동으로, 후대 독립운동의 토대를 마련했고, 국민이 나라의 주인이 되는 진정한 국가 비전을 제시했다. 오늘날 그가 외쳤던 자주정신과 민주주의 정신은 여전히 유효하며, 역사 속에서 그를 기억하는 것은 곧 우리가 지켜야 할 가치들을 되새기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