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鄭敾, 1676~1759)**은 조선 후기 실경산수화의 창시자로,
자연을 이상화한 중국식 산수화를 넘어, **조선의 실제 풍경을 그려낸 진경산수화(眞景山水畵)**를 확립한 인물이다.
그는 서울, 금강산, 인왕산, 한강 등 우리 강산의 아름다움을 눈으로 보고 손으로 담았고,
자연과 현실을 있는 그대로 화폭에 옮기며 한국 회화의 독립적 정체성을 만들어냈다.
2024년의 시점에서 정선을 다시 읽는다는 것은,
단지 화가 한 사람을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조선인의 시선으로 자연을 바라보는 감각과 정신을 복원하는 일이다.
진경산수화의 개척 – 이상이 아닌 현실을 그리다
정선은 당대 화단의 주류였던 남종화와 북종화의 문인화 전통을 따르면서도,
그 경계를 넘어 실제 풍경을 직접 관찰하고 묘사하는 새로운 시도를 시작했다.
이는 그가 개척한 **‘진경산수화’**의 출발점이었다.
- 진경산수의 개념
진경산수란 말 그대로 ‘참된 경치’, 실제로 존재하는 산수풍경을 그린 그림이다.
이전까지의 산수화는 중국에서 유입된 이상적 구도, 상상적 자연을 표현했지만,
정선은 조선의 자연, 특히 금강산, 인왕산, 한강 등 실경을 직접 답사하고 기록했다. - 정선의 시도는 당시로서는 파격이었다
조선 화단에서는 중국화풍을 따르는 것이 곧 고급 미학으로 간주되던 시기였지만,
정선은 “우리 산천이 왜 중국보다 못한가”라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조선 산수의 아름다움을 주체적으로 표현하기 시작했다. - 구도와 붓터치의 변화
그의 그림은 구체적인 지형 묘사, 명암 대비의 명확성,
붓의 질감을 살린 생동감 있는 선묘로 기존 문인화와 차별된다.
대표작 『인왕제색도(仁王霽色圖)』는 구름이 걷힌 인왕산의 장엄한 풍경을 묘사한 작품으로,
오늘날까지도 진경산수의 정수로 평가된다.
정선은 자연을 관념의 대상이 아닌, 실체로 인식하고 그것을 한국적 시선으로 형상화한 인물이었다.
조선 산천을 기록하다 – 여행과 사생의 화가
정선은 단지 그림을 그리는 데 그치지 않고,
당대 최고의 여행자이자 기록자였다.
그는 직접 전국을 유람하며 풍경을 눈으로 관찰하고 손으로 채집하는 방식으로
조선의 자연과 풍경을 화폭에 고스란히 담았다.
- 금강산 유람과 관동팔경
그는 여러 차례 금강산을 유람하며,
만폭동, 비로봉, 구룡연, 장안사 등 금강산의 대표적 명승지를 다수 화폭에 남겼다.
이러한 작업은 『해악전신첩(海嶽傳神帖)』에 수록되었으며,
이는 단순한 예술작품을 넘어 조선 산천의 시각적 기록물로서 역사적 가치가 높다. - 한양의 풍경을 중심으로 한 작업
정선은 인왕산, 북악산, 경복궁, 청계천, 한강 등 서울 일대의 풍경을 집중적으로 그렸다.
이는 조선 후기 한양의 도시성과 자연의 조화를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이자,
도시 풍경화의 기틀이기도 하다. - 기록화의 의미
정선의 그림은 단순한 자연 묘사를 넘어서,
역사·문화적 배경이 깃든 공간에 대한 시각적 해석을 제공한다.
그의 화폭은 당시의 정치, 문화, 지리 인식을 간접적으로 드러내는 시각 사료로서의 역할을 한다.
정선은 붓으로 여행을 하고, 그림으로 조선을 기록한 시각의 저자였다.
정선을 다시 읽는 이유 – 한국 회화의 정체성과 미의식
오늘날 우리는 정선의 그림에서 단순한 풍경을 넘어,
조선인의 자연 인식과 주체성, 미적 감각을 발견하게 된다.
그가 남긴 진경산수화는 한국화의 정체성과 독립성의 뿌리라 할 수 있다.
- 중국 중심주의 탈피와 조선의 자각
정선의 작업은 중국화 중심의 문화관에서 벗어나
조선의 자연과 미를 자립적으로 인식한 최초의 시도였다.
이는 단순한 회화 혁신이 아니라, 문화적 자존의 표출이기도 하다. - 실용성과 미학의 결합
그의 그림은 단순히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당대 지리, 관광, 사찰, 명승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지도적 기능도 수행했다.
이는 조선 후기 실학적 관점과도 연결되며, 회화의 실용성을 높였다. - 한국화의 방향성을 제시한 개척자
이후 김홍도, 장승업, 소치 허련 등 조선 후기~근대기 화가들까지도
정선의 화풍과 정신을 계승하거나 비판하며 발전시켰다.
그는 단지 한 사람의 화가가 아닌, 조선 회화사의 방향을 바꾼 흐름의 출발점이다.
정선은 조선의 산천을 통해 조선의 자존을 그리고,
그림 속 자연을 통해 우리 자신의 정체성을 환기시킨 예술가였다.
결론
정선은 조선 후기 회화의 전환점을 만든 실경산수의 창시자로,
자연을 조선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그 아름다움을 한국화의 언어로 풀어낸 진정한 화가였다.
그의 화폭은 기록이고 예술이며 사상이며 문화였다.
2024년 오늘, 우리는 정선의 그림을 통해
자연을 어떻게 바라보고,
우리의 미와 세계를 어떻게 표현할 것인지에 대한 깊은 통찰을 얻게 된다.
정선을 다시 읽는 것은,
조선의 눈으로 오늘을 보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