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 사상과 금융 이론의 형성
스코틀랜드의 경제학자 존 로(John Law, 1671-1729)는 금속 화폐의 한계를 지적하고 토지를 기반으로 한 지폐 발행과 신용 확대를 주장한 선구적인 인물입니다. 그는 수학과 도박에 능했으며, 유럽 각국을 떠돌며 금융 시스템에 대한 자신만의 이론을 발전시켰습니다. 로는 국가의 부를 증대시키기 위해서는 유통되는 화폐의 양을 늘려야 하며, 이는 토지와 같은 실물 자산을 담보로 한 지폐 발행으로 가능하다고 믿었습니다. 그의 아이디어는 당시 금과 은에 기반한 경직된 화폐 시스템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했습니다. 그는 또한 은행을 통해 신용을 창출하고 경제 활동을 활발하게 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이러한 그의 초기 사상은 훗날 프랑스에서 대규모 금융 실험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프랑스에서의 금융 개혁과 미시시피 계획
존 로는 자신의 금융 이론을 현실에 적용할 기회를 프랑스에서 얻었습니다. 루이 14세 사망 후 극심한 재정난에 시달리던 프랑스 섭정 필리프 2세는 로의 제안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로는 1716년 사립 은행인 '제네랄 은행(Banque Générale)'을 설립하고 지폐를 발행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은행은 성공적으로 운영되며 금융 거래를 활성화시켰습니다. 이어 그는 1717년 '서방 회사(Compagnie d'Occident)', 일명 '미시시피 회사'를 설립하여 루이지애나 식민지 개발 독점권을 획득했습니다. 이 회사는 곧 프랑스의 모든 무역 독점권을 흡수하며 '인도 회사(Compagnie des Indes)'로 확대 개편되었습니다. 로는 회사의 주식 가격을 인위적으로 부양하며 투기 열풍을 일으켰고, 이는 역사상 최초의 대규모 자산 거품 중 하나인 '미시시피 거품'으로 이어졌습니다.
거품 붕괴와 역사적 평가
미시시피 회사의 주가는 비현실적인 수준으로 폭등했지만, 실물 경제의 뒷받침 없이 이루어진 투기는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회사의 수익성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지폐 발행량이 과도해지면서 사람들은 로의 시스템에 대한 신뢰를 잃기 시작했습니다. 주가 폭락과 지폐 가치 하락이 동시에 발생하면서 '미시시피 거품'은 순식간에 붕괴했습니다. 이 사태로 인해 프랑스 경제는 큰 혼란에 빠졌고, 많은 사람이 파산했습니다. 존 로는 모든 직위에서 물러나 프랑스를 떠나야 했습니다. 그의 금융 실험은 처참한 실패로 끝났지만, 그는 근대적인 중앙은행 시스템, 지폐 발행, 신용 창출의 가능성을 처음으로 보여준 인물로 평가받습니다. 그의 이론은 후대에 많은 비판과 연구의 대상이 되었으며, 금융 시장의 투기와 거품의 위험성을 보여주는 사례로 남았습니다.
카테고리 없음